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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

퀀트 투자의 아버지, 에드워드 소프

by 카니 2026. 7. 16.

블랙잭에서 월가까지 — IQ 200 천재가 증명한 것:

전략보다 중요한 건 얼마를 걸고, 끝까지 지키느냐다

이미지 출처 : YouTube — 에드워드 소프 3부작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를 수학으로 무너뜨린 남자가 있다. 그는 곧이어 월가로 건너가, 20년 동안 단 한 해도 손실을 내지 않는 펀드를 운용했다. '과학적 투자', 곧 오늘날의 퀀트(quant)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소프(Edward Thorp)의 이야기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교훈은 뜻밖에 단순하다. 이기는 전략을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얼마를 걸지(bet sizing)를 알고, 그 규칙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소프의 자서전 『A Man for All Markets』와 그를 다룬 3부작 영상—카지노 편, 초기 실패 편, 성공 편—을 하나로 엮어 정리했다.

① 대공황이 낳은 천재

소프는 1932년, 미국 경제가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가장 참혹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집안은 몹시 가난했고 아버지는 경비원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러나 소프의 머리는 남달랐다. 측정된 IQ가 170~200으로, 통계적으로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돈이 없어 이름 없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과학 경시대회에서 우승하며 자극을 받아 대학에 들어갔다. 어린 시절의 궁핍은 그에게 "돈을 벌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남겼다. 그 열망이 훗날 그를 카지노와 월가로 이끌었다.

② 카지노를 이기는 세 가지 무기

1958년, 26세의 소프는 우연히 블랙잭에 관한 한 편의 논문을 접한다. 수학자들이 컴퓨터로 최적의 플레이를 시뮬레이션한 연구였다.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카지노가 3% 안팎으로 유리하다고 믿었지만, 정석대로만 두면 카지노의 우위(house edge)를 0.62%까지 좁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논문을 세 단계로 업그레이드했다.

기본 전략(basic strategy)

내 카드 두 장과 딜러가 보여 주는 한 장을 놓고, 각 상황에서 카드를 더 받을지(hit), 멈출지(stay), 판돈을 두 배로 올릴지(double down)를 정해 둔 표가 기본 전략이다. 예컨대 내가 19점인데 딜러가 4점이면 멈추는 것이, 내가 9점이고 딜러가 4점이면 판돈을 두 배로 올리는 것이 최적이다. 모든 상황에서의 최선의 수가 이 한 장의 기본전략표에 담겨 있다.

카드 카운팅(card counting)

0.62%라는 수치는 카드가 매번 똑같은 확률로 나온다는 가정 위에 있다. 그러나 실제 카지노에서는 쓴 카드가 덱에서 빠져나간다. 소프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남은 덱에 10·J·Q·K·A 같은 높은 카드가 많이 남아 있으면 플레이어에게 유리하고, 낮은 카드가 많으면 불리하다. 그는 2~6이 나오면 +1, 10~A가 나오면 −1로 세는 단순한 계수법을 도입했다. 카운트가 플러스로 높아질수록 플레이어의 승률이 올라간다.

얼마를 걸 것인가 — 켈리 공식(Kelly criterion)

유리하다고 해서 무작정 크게 걸면 몇 번 이겨도 한 번의 올인으로 파산한다. 그래서 소프는 1956년 존 켈리(John Kelly)가 만든 켈리 공식을 도박에 결합했다. 블랙잭에서는 '이길 확률 × 2 − 1'이 걸어야 할 비중이 된다. 승률 50.4%면 자본의 0.8%, 51.4%면 2.8%를 거는 식이다. 불리할 때는 최소로 걸고, 유리할 때만 크게 거는 것이다.

이로써 소프는 세 가지를 손에 쥐었다. 무엇을 할지(기본 전략), 지금 유리한지(카드 카운팅), 얼마를 걸지(켈리 공식). 이 세 축은 뒤에서 그대로 투자 원칙이 된다.

③ 리노 원정과 카지노의 반격

이론을 검증할 자금이 필요하던 차에, 매니 킴멜(Manny Kimmel)이라는 부유한 도박꾼이 10만 달러를 대겠다며 접근했다. 소프는 오히려 판돈을 줄여 1만 달러로 시작하자고 했다. 돈보다 자기 이론이 실제로 통하는지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집에서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한 뒤 리노(Reno)의 카지노로 향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30시간 만에 1만 달러가 2만 1,000달러로 불었다. 카지노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카드를 수시로 섞어 카운팅을 무력화하고, 딜러가 밑장을 빼는 방식으로 속임수를 썼으며, 심지어 소프의 음료에 약을 타기도 했다. 위협을 느낀 소프는 실험을 접었고, 이후 카지노들은 블랙잭 규칙 자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꿔 버렸다.

그럼에도 소프는 50년 뒤에도 "카드 카운팅으로 여전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21'에 나오는 MIT 학생들의 팀플레이가 그 방식이다. 한 명은 앉아서 카운트만 세고, 다른 한 명은 신호를 받아 유리한 순간에만 크게 거는 식이다. 다만 이는 카지노가 관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국의 강원랜드는 하우스 엣지가 훨씬 커, 플레이어가 이기기는 사실상 매우 어렵다.

④ 블랙잭은 곧 투자다

소프가 훗날 투자의 고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블랙잭에서 이기는 방법과 투자에서 이기는 방법은 원리가 거의 같다. 첫째, 우위(edge)가 있는 전략을 찾는다. 블랙잭의 기본 전략이 곧 투자 전략이다. 둘째, 얼마를 걸지 정한다. 켈리 공식이 곧 position sizing이자 risk management다. 셋째, 정한 전략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따른다.

세 번째가 특히 어렵다. 함께 카지노를 털었던 킴멜은 정석을 무시하고 크게 지르다 결국 규칙을 어겼다. 대다수 투자자가 오버베팅으로 한 종목에 '몰빵'하는 것과 같은 실수다. 소프가 강조한 승리의 조건은 역설적이다. 결과에 집중하지 말라는 것이다. 눈앞의 돈을 '연습용 칩'으로 여기고, 매 순간 최선의 수를 두는 것에만 집중할 때 비로소 이길 수 있다. 이는 투자에서 "손익에 집착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까에 집중하라"는 조언과 정확히 겹친다.

⑤ IQ 200도 주식 앞에선 원숭이가 된다

1962년, 30세의 소프는 주식에 입문한다. 그리고 곧 '해서는 안 되는 투자'의 교과서를 몸소 쓰기 시작한다. 신문에서 '기술혁신·신규 바이어·매출 상승' 같은 단어가 들어간 한 기업을 발견하고 상당한 금액을 넣었다. 뒤늦게 그는 어떤 종목이든 신문 기사에는 똑같은 미사여구가 붙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수 버튼을 누르는 순간, IQ 200의 천재도 객관성을 잃고 '원숭이'가 된 것이다.

주식은 2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소프는 호가창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버텼다. 전형적인 손실 회피(loss aversion) 편향이었다. 다행히 1년 뒤 본전을 회복하자 곧바로 팔아 버렸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반토막 났던 주식이 본전까지 왔다는 것은 이미 100% 오른 뒤라는 뜻이다. 본전에 집착한 사람은 딱 거기서 팔아 이후 상승을 놓치고,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50%, −90%, 최악의 경우 파산으로 간다. 손절 없이 큰 손실을 안으면, 최선의 결과는 0%이고 최악은 재앙이다.

실수는 이어졌다. "24년 연속 오른 생명보험주"를 권유받아 사자마자 상승 행진이 끝났다. momentum은 3·6·12개월의 중기에서는 통하지만, 3~5년의 장기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꺾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그는 뒤늦게 배웠다. 압권은 은(silver) 투자였다. 얼마를 걸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자기자본 13%에 나머지는 마진(margin)으로 채운 무모한 레버리지 투자를 감행했고, 은값이 고점 대비 33% 빠지자 강제 청산당했다. 켈리 공식의 창시자급 인물이 정작 실전에서는 과잉확신(overconfidence)에 빠져 리스크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한 것이다.

⑥ 워런트와 옵션 가격의 발견

3년 연속 시장에 얻어맞은 소프는 1965년부터 방식을 바꾼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워런트(warrant)였다. 워런트는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로, 콜옵션(call option)과 성격이 비슷하다. 예컨대 만기까지 주식을 1만 원에 살 수 있는 권리라면, 주가가 1만 5,000원으로 오를 경우 1만 원에 사서 되팔아 차익을 얻을 수 있으니 그 권리 자체에 분명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1960년대에는 그 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소프는 이 문제를 파고들어 옵션의 가격을 산정하는 공식을 스스로 도출했다. 그리고 여기에 헤지를 결합했다. 저평가된 워런트를 사는 동시에, 그 주식을 일정 배수(예: 워런트 대비 약 4배)로 공매도(short)해 주가 변동 위험을 상쇄하는 방식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델타 헤지(delta hedge)다. 주가가 오르면 저평가됐던 워런트가 더 크게 올라 이익이 나고, 주가가 내리면 공매도에서 이익이 나 워런트의 손실을 메운다. 반대로 워런트가 고평가면 주식을 사고 워런트를 공매도한다. 1965년부터 이 방식으로 돈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⑦ Beat the Market, 그리고 블랙-숄즈로 이어진 아이디어

돈을 벌던 소프는 우연히 같은 전략을 이미 쓰고 있던 경제학자 신 카소프(Sheen Kassouf)를 만나, 함께 책 『Beat the Market』을 썼다. backtest 기준 연 25%가량이었고 실제로도 그만큼 벌었다. 당시 이런 투자를 하는 사람은 세계에 두어 명뿐이었다.

연 25%짜리 전략을 왜 책으로 공개했을까. 소프는 그 공식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남들이 따라 하더라도 자신은 더 나은 공식을 또 만들면 그만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피셔 블랙(Fischer Black)과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만든 것이, 금융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공식으로 꼽히는 블랙-숄즈(Black-Scholes) 공식이다. 1972~73년 발표된 이 공식으로 훗날 숄즈와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은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블랙은 그전에 세상을 떠나 상을 받지 못했다(학계를 떠나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그의 이력을 두고, 노벨위원회가 그를 달리 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작 그 길을 처음 연 소프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조용히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돈을 벌면 된다"는 태도였다. 

⑧ 버핏과의 만남

1968년, 소프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을 만난다. 당시 버핏은 주식이 고평가됐다고 보고 자신의 투자조합인 버핏 파트너십(Buffett Partnership)을 청산하려던 무렵이었다. 연 20% 넘게 재미를 보던 버핏의 한 투자자가 "소프라는 교수가 연 25%를 낼 수 있다는데 사실이냐"며 검증을 청했고,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접근법은 달랐다. 버핏은 기업 가치를 평가해 주가가 그보다 크게 쌀 때 사는 안전마진(margin of safety) 방식이었다. 소프는 한 기업이 발행한 여러 증권(주식·채권·우선주·워런트) 가운데 저평가된 것을 사고 고평가된 것을 공매도하는 상대가치(relative value) 방식이었다. 버핏은 소프의 접근도 훌륭하다고 봤다.

소프는 버핏이 기업 가치와 복리(compounding)를 제대로 이해하는 드문 사람이라며, 아내에게 "이 사람은 언젠가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버핏은 1993년 세계 최고 부자가 됐고 2007년 다시 1위에 올랐다. 두 사람은 1968년 이후 한동안 만나지 않다가, 1983년 소프가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를 주당 약 900달러에 대량 매수하며 인연을 이어 갔다. 이 주식은 이후 수백 배로 뛰었다. 버핏 역시 소프의 펀드를 신뢰해 주변에 소개했다.

⑨ 20년간 손실 없는 펀드, 그리고 인생의 거래

소프는 1965년 옵션 가격 공식을 만들고, 1966~67년 책을 낸 뒤, 1969년부터 남의 돈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세운 프린스턴-뉴포트 파트너스(Princeton-Newport Partners)는 1969년부터 1988년까지 20년 동안 단 한 해도 손실을 내지 않았다. 초기 약 6년(1969~1974)은 손실 분기조차 거의 없었다. 매매 승률은 열 번 중 여덟 번이 이익, 한 번은 본전, 한 번은 소액 손실이었고, 이긴 폭이 잃은 폭보다 훨씬 컸다. 블랙-숄즈 공식이 세상에 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사이 소프는 이미 그보다 정교한 자기 공식으로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의 인생 거래로 꼽히는 것이 1972년의 워런트 투자다. 자신의 모델로는 4달러의 가치가 있는 워런트가 시장에서 단돈 27센트에 거래되고 있었다. 모델 가격의 10분의 1도 안 되는 헐값이었다. 소프는 약 3,200달러어치를 사들이면서 주식은 공매도로 헤지했다. 이후 주가가 떨어지자 공매도에서 5,500달러를 챙겨, 투자 원금은 그 단계에서 이미 회수하고도 남았다.

남은 것은 헐값에 산 워런트였다. 몇 해에 걸쳐 주가는 1.5달러에서 15달러로, 다시 100달러까지 뛰었다. 중간중간 팔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모델이 "아직 저평가"라고 말하는 한 소프는 팔지 않았다. 마침내 모델이 고평가 신호를 보내자 매도해, 약 3,200달러의 투자로 100만 달러 안팎, 대략 330배의 수익을 냈다. 핵심은 그가 '27센트가 대박이 났다'는 서사에 취하지 않고, 오직 "내 모델 대비 싼가 비싼가"만 기계처럼 판단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몇 배만 올라도 팔아 치웠겠지만, 소프는 매수 후에도 원숭이가 되지 않고 끝까지 인간으로 남았다.

⑩ 통계적 차익거래, 그리고 회사의 몰락

1980년대 초부터 소프는 컴퓨터를 이용한 통계적 차익거래(statistical arbitrage)로 나아갔다. 그가 활용한 팩터는 오늘날의 퀀트 투자와 놀랄 만큼 닮았다. 낮은 PER, 높은 배당수익률, 단기 momentum(최근 한 주간 크게 빠진 종목은 반등하고 급등한 종목은 되돌리는 mean-reversion 성격), 공매도 비율(short interest),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s surprise) 등을 근거로 좋은 종목을 사고 나쁜 종목을 공매도하는 방식이었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뜻밖의 곳에서 무너졌다. 동업자 측이 부정에 얽혀 사법 리스크에 처했고, 훗날 뉴욕시장이 되는 검사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가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동업자에게 소프를 물고 늘어지도록 압박했지만 그가 응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프린스턴-뉴포트는 이 사건으로 문을 닫았다.

그러나 소프는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1994년 그는 다시 퀀트 펀드(Ridgeline)를 세워 8년간 연 18%가량을 벌었다. 2000년대 들어 통계적 차익거래를 하는 펀드가 늘며 초과수익이 줄자, 그는 조용히 은퇴했다.

⑪ 소프가 남긴 것 — 전략, 베팅 크기, 그리고 규율

소프는 자신을 '수학 천재'가 아니라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최고의 수학자는 아니어도 옵션 가격만은 남들이 못 할 때 계산할 수 있었고, 바로 그 강점 위에 자기만의 우위를 세웠다는 것이다. 카지노에서 그는 결국 얼마를 거느냐가 승부를 가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러나 초기 주식 투자에서는 정작 이 원칙을 잊고 무너졌다. 이후 그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먼저 backtest로 전략의 기대수익·승률·변동성을 파악하고, 그 수치를 켈리 공식에 넣어 한 번에 걸 금액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베팅 크기를 엄격히 관리했다.

다른 퀀트들도 '아이디어 → backtest → 실전 → 업데이트'라는 절차는 비슷하게 밟는다. 다만 소프는 남의 아이디어를 빌리기보다 스스로 새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달랐다. 그가 남긴 통찰 하나는 시장의 효율성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시장이 효율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다."

 

퀀트 투자가 개별 종목을 몰라도 성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험사는 가입자 개개인을 잘 모른 채 성별·나이·병력 같은 몇 가지 정보만으로 보험료를 매기고, 수십만 명에게 분산해 통계적으로 이익을 낸다. 퀀트 투자도 몇 개의 핵심 팩터로 수많은 종목에 분산해, 확률적으로 유리한 전략을 반복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종목은 몰라도 전략은 안다"는 소프의 말이 그 요체다.

훗날 노벨상을 놓친 것이 아쉽지 않냐는 물음에, 소프는 이렇게 답했다. 별것 아닌 공식으로 받는 상보다, 스스로 우위를 발굴해 가족이 풍족하게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블랙잭이든 투자든 순서는 같다. 우위 있는 전략을 찾고, 켈리 공식으로 얼마를 걸지 정해 리스크 관리를 하고, 한번 정한 전략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것. 대공황이 낳은 천재는 그 단순한 원칙을 카지노와 월가에서 두 번 증명해 보였다.

 

 

인물 : Edward Thorp — 저서 Beat the Dealer, Beat the Market, A Man for All Marke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