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회를 기다리고, 레버리지를 절제하고, 미친 짓을 피하라 — 99년 인생이 정리한 투자와 삶의 원칙
찰리 멍거(Charlie Munger)는 100번째 생일을 한 달여 앞둔 99세에,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고 2주 뒤 세상을 떠났다. 60여 년간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동업자이자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부회장이었지만, 그는 그 자체로 거인이었다.
기업의 과욕과 탐욕을 꾸짖고, 투자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설파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이 글은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인터뷰들을 엮어, 큰 기회를 기다리는 인내, 레버리지의 절제, 그리고 '미친 짓을 피하는' 지혜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① 프랭클린을 닮고 싶었던 사람 — 여러 학문을 꿰는 사고
멍거는 자신을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에 빗대어 만들어 갔다. 하버드 로스쿨에 가기 전 수학·물리학·기상학·공학을 공부했고, 심리학과 건축까지 독학했다. 여러 학문의 모델을 끌어와 문제를 보는 '멀티 모델' 사고가 그의 무기였다.
그가 여러 학문의 모델을 갖추려 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도구가 하나뿐인 사람은 세상 모든 문제를 그 하나의 도구로만 재단하기 때문이다. 심리학만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심리로, 회계만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숫자로 풀려 한다. 멍거는 이 위험을 유명한 한마디로 압축했다.
"To the man with only a hammer, every problem looks pretty much like a nail."
— Charlie Munger
그래서 그는 여러 분야의 핵심 원리를 하나의 '격자형 사고 틀(latticework of mental models)'로 엮어, 문제마다 가장 알맞은 도구를 꺼내 쓰려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교과서가 틀렸다고 느끼면 머릿속으로 고쳐 읽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시절 프로이트(Freud)의 전집을 통독하고는 그가 헛소리를 한다고 결론 내렸을 정도다. 그의 인생 최고의 스승은 하버드 로스쿨의 계약법 교수 론 풀러(Lon Fuller)였는데, 법과 경제학을 아름답게 통합해 보여 준 사람이었다. 멍거는 대부분의 지식을 스승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소화했다. 그가 자주 한 말이 이를 요약한다.
"나는 죽은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데 아주 능하다. 그것이야말로 누구나 익혀야 할 능력이다."
② 대공황이 가르친 인내와 확률
1924년 새해 첫날에 태어난 멍거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가족을 사방에서 무너뜨리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 건축가였던 삼촌은 건설이 멈추자 일자리를 잃었고, 또 다른 삼촌은 빚에 몰렸다. 이 광경에서 소년 멍거는 아무리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세상의 냉정한 이치였다. 그리고 그런 불운 앞에서도 결국 견뎌 내는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감각은 훗날 그의 리스크 관리와 '견뎌내기(soldier through)' 철학의 뿌리가 된다.
확률을 다루는 감각은 교실에서 출발했다. 멍거는 순열·조합(permutations and combinations)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제 상황에 적용할 줄 알았다. 승산을 스스로 계산할 수 있게 되자, 그는 판돈이 걸린 자리에서 한 가지 규칙을 세웠다. 자신에게 확률적 우위(edge)가 있을 때만 건다는 것이다. 구슬치기 같은 내기에서 그가 또래보다 늘 두둑한 밑천을 쥐고 있었던 것도, 이길 자신이 없는 판에는 애초에 끼지 않은 덕분이었다. 유리할 때만 걸고 불리하면 물러선다는 이 습관은, 훗날 기대값(expected value)이 플러스일 때만 크게 베팅한다는 그의 투자 원칙으로 이어진다.
③ 코닥의 교훈, 그리고 '능력의 범위'
멍거가 즐겨 든 사례가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이다. 창업자 조지 이스트먼은 뛰어난 화학자였고, 회사는 수많은 인재를 고용해 위대한 성장주가 됐지만 결국 파산으로 주주들은 한푼도 건지지 못했다. 멍거의 결론은 냉정했다. "천재가 이끈 위대한 기업조차 주주를 파산시킬 수 있다면, 평범한 이들은 훨씬 쉽게 그렇게 된다."
코닥의 몰락은 한 종목에 재산을 몰지 말라는 분산 투자의 근거로도 읽힌다. 동시에 멍거는 더 중요한 교훈을 끌어냈다. "무엇이든 돈을 벌 만큼 뛰어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멍거는 자신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피했다.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웃 데이비스 부자(父子)를 보며, 그는 자신이 그런 재능이 필요한 사업에는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예 발을 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를 아는 것이 핵심이었다.
④ 엉덩이로 앉아 있는 투자 — 큰 기회만 기다린다
멍거의 투자 스타일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투자(sit on your ass investing)'로 요약된다. 야구에 비유하면, 들어오는 공마다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치기 좋은 공(fat pitch)이 스트라이크 존 한복판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크게 휘두르는 것이다. 잦은 매매는 세금과 거래 비용으로 수익을 조금씩 갉아먹을 뿐이다. 좋은 기업을 사서 가만히 들고 있는 편이, 부지런히 사고파는 것보다 낫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 집중의 원리를 전설적 농구 감독 존 우든(John Wooden)에 빗댔다. 우든은 출전 시간의 약 90%를 최고의 선수 일곱 명에게 몰아줬고, 나머지 선수들은 사실상 이들의 연습 상대였다. 가장 뛰어난 자원에 집중할수록 그 자원은 더 빠르게 성장한다. 버크셔가 수십 개로 분산하는 대신 소수의 위대한 기업에 자본을 몰아넣은 것도 같은 논리였다.
기회의 희소성에 대한 그의 통찰은 특히 날카롭다. 평생에 걸쳐 정말 중요한 '한 방'은 몇 번 오지 않는다. 멍거는 "버핏의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거래 열 개를 빼면, 그 기록은 보잘것없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드물게 찾아오는 결정적 기회를 알아보고 그때 과감하게 크게 거는 것—그것이 전부라는 뜻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
⑤ 레버리지의 절제 — "나쁜 하루가 당신을 죽이게 하지 마라"
큰 기회를 크게 잡되, 파국은 피해야 한다. 멍거가 반복한 리스크 원칙은 명료하다.
"Do not live your life in such a fashion that a bad day can kill you."
— Charlie Munger
투자에서 이는 과도한 leverage를 쓰지 않는 것을 뜻한다. 홈런 타자도 모든 공에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는다. 제대로 칠 수 있는 공을 기다린다. 멍거와 버핏은 보험 float에서 일부 레버리지의 이점을 누리긴 했지만, 주주의 돈을 다룰 때는 늘 신중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버크셔는 조금 더 레버리지를 썼다면 지금 가치의 두 배가 됐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들을 믿고 맡긴 주주들이 재산의 4분의 3을 잃는 일은 만들지 않으려 했다.
물론 확신이 설 때는 크게 거는 것도 필요하다. 멍거의 할아버지는 "정말 옳다고 확신할 때는 크게 실어라"라고 가르쳤다. 다만 '정말 옳다고 확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참고로 멍거는 자신의 최악의 거래로 알리바바(Alibaba)를 꼽았다. 중국 인터넷 시장의 지배력에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알리바바가 결국은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 '유통업체'라는 점과, 창업자 잭 마(Jack Ma)가 중국 정부와 부딪치며 불거진 정치적 리스크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나쁜 날은 온다. 그래서 어떤 단일 실수도 치명상이 되지 않도록, 베팅 크기와 leverage를 절제해야 한다.
⑥ 그레이엄을 넘어서, 그리고 투자의 황금기
버핏의 투자는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에서 출발했다. 그레이엄은 사업 자체는 형편없어도 보유 자산 대비 충분히 싸기만 하면 사들이는 '담배꽁초(cigar-butt)' 방식—버려진 꽁초에서 마지막 한 모금의 이익을 취하듯, 헐값 주식에서 짧은 반등을 취하는 전략—으로 수십 년간 성과를 냈다. 이 방식은 대공황이 헐값 주식을 쏟아내던 시절에 특히 잘 통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시간이 지나며 줄어들었고, 너도나도 그레이엄을 흉내 내면서 경쟁만 치열해졌다. 멍거의 업그레이드는 분명했다. 싼 나쁜 기업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가치를 키워 가는 위대한 기업을 사는 것이었다. 그레이엄을 넘어선 이 전환이 버크셔를 오늘의 버크셔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투자의 황금기는 끝났는가. 멍거의 답은 신중했다. "영원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 더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밸류에이션은 높아졌고, 경쟁자들은 더 똑똑하고 더 공격적이며 더 많아졌다. 그가 보기에 전설적인 수익은 대개 특별한 순간—주식을 살 사람의 90%가 시장에 낙담해 등을 돌린, 2008~2009년 같은 세대적 저점(generational low)—에서 나왔다. 그런 드문 기회를 붙잡은 소수 안에 멍거 자신이 있었다. 지금 시작하는 이들에게 열린 문은 그때보다 좁다는 것이, 그의 냉정한 진단이었다.
⑦ BYD와 머스크 — 천재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멍거의 대표적 성공 투자인 BYD(비야디)는 그의 파트너 리 루(Li Lu)가 발굴했다. 창업자 왕촨푸(Wang Chuanfu)는 주 70시간을 일하는 데다 기계에 대한 천재적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왕촨푸가 파산한 자동차 공장을 인수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려 하자, 멍거와 리 루가 극구 말렸다는 것이다. 신생 업체가 도요타·메르세데스 같은 기존 강자와 겨루는 것은 어리석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촨푸는 듣지 않았고, 오늘날 BYD는 막대한 이익을 내는 회사가 됐다. 멍거의 결론은 유쾌하다. "천재들은 원래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보는 시선에도 이 감탄과 경계가 뒤섞여 있다. 멍거는 머스크가 "두세 번쯤 파멸의 벼랑 끝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다가 돌아왔다"며 그 대담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바로 그 극단적인 베팅이 결과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기에, 그는 머스크에게 투자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이 자신 있게 값을 매길 수 없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멍거는 이런 것들을 '너무 어려운 파일(too-hard pile)'에 넣어 두었다. 확신 있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면 억지로 답을 내려 하지 않고 그냥 옆으로 치워 둔다—그것이 능력의 범위를 지키는 그의 방식이었다.
⑧ 거시를 보는 눈 — 돈, 불평등, 경제학의 한계
멍거는 금융위기 당시 중앙은행의 대규모 양적완화(QE)—사실상 돈을 찍어 시장에 푸는 것—를 불가피하고 옳은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 부작용도 냉정하게 짚었다. 위기를 막으려 푼 돈이 자산 가격을 밀어 올리면서, 가장 큰 혜택이 자산을 많이 가진 부자에게 돌아갔고 그 결과 불평등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의도치 않은 '사고(accident)'로 봤다. 동시에 그런 돈 풀기를 앞으로 무한정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그가 경제학을 신뢰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똑같은 처방을 써도 시점과 환경이 다르면 결과가 달라진다. 반복 가능한 법칙을 가진 물리학과 달리, 경제는 그렇게 깔끔하게 예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마와 대영제국이 그러했듯 위대한 국가도 언젠가는 쇠락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국가 부채를 지나치게 걱정한 것은 아니었다.
국제 질서를 보는 눈은 실용적이었다. 그는 자유무역—리카도(Ricardo)의 비교우위—이 중국의 부상을 이끌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무역 제한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핵심은 수소폭탄을 가진 두 강대국이 대치하기보다 사이좋게 교역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그가 정말로 두려워한 재앙은 기후변화가 아니라 핵전쟁이었다. 기후 문제는 인류가 감당해 낼 수 있다고 본 반면, 핵전쟁은 그렇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금융위기 직전 모기지·은행업계의 행태만큼은 "역겨웠다(obscene)"고 강하게 비판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무분별하게 대출을 내주고, 그 부실 대출을 구조화 상품(MBS·CDO)으로 묶어 되팔아 위험은 남에게 떠넘긴 채 수수료만 챙긴 행태였다. 멍거는 이를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도덕적 타락으로 봤다.
⑨ 뒤집어 생각하고, 미친 짓을 피하라 — 멍거가 말한 잘 사는 법
멍거의 사고를 관통하는 도구가 '뒤집기(invert)'다. 어떻게 성공할지가 아니라, 어디에 있으면 안 되는지를 먼저 찾아 그곳을 피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 원칙을 삶에도 그대로 적용해, 인생을 망치는 표준적인 경로—중독, 원한, 과욕—를 미리 파악해 멀리하는 것을 평생의 게임으로 삼았다. 담배는 피우면 속이 메스꺼워 자연히 멀리하게 됐는데, 그 우연이 그의 장수에 한몫했다. 집안에 알코올 문제가 많았던 탓에 술 또한 늘 경계했다.
삶의 비결을 묻자 그는 지극히 단순한 규칙들을 답으로 내놨다.
원망을 품지 말 것, 수입 이상으로 쓰지 말 것, 어려움 속에서도 명랑함을 유지할 것,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것, 해야 할 일을 할 것. — 진부할 만큼 단순하지만, 그래서 잘 통하는 규칙들이다.
그는 기대치를 낮추고, 유머 감각을 지니고, 사랑하는 친구·가족에 둘러싸이라고 조언했다. 부자로 남는 것보다 제정신으로 남는 것(staying sane)이 더 어렵다고도 했다. 큰 재산을 모은 뒤에도 60여 년간 같은 집에서 살았는데, 화려한 집은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며 자녀를 망칠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많이 읽지 않고 똑똑해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독서를 강조했고, 콜라와 땅콩 과자를 즐기면서 "그것이 내 마지막 한 주를 앞당긴다면, 그 마지막 한 주는 어차피 좋은 시간이 아니다"라고 농담했다.
그러나 그의 명랑함은 고통을 모르는 자의 낙관이 아니었다. 멍거는 어린 시절 사촌과 소꿉친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봤고, 훗날 당시 완치율이 사실상 0%이던 백혈병으로 어린 아들 테디를 잃었다. 그는 매일 몇 시간씩 거리를 걸으며 흐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바꿀 수 없는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견뎌내는 것(soldier through)'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훗날 그 백혈병의 완치율이 90%를 넘어선 것—인류가 두 세기에 걸쳐 이룬 진보—을 지켜보는 일이야말로, 그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큰 기회를 알아보고, 파국을 피하고, 미친 짓을 멀리하며, 무너지는 순간에는 그저 견뎌 낸다. 99년의 삶이 남긴 원칙은 그토록 단순했다.
원 영상 : YouTube — 찰리 멍거 인터뷰(CNBC, Becky Quick)
인물 : Charlie Munger (1924–2023) — Berkshire Hathaway 부회장